등명사는 "신증동국여지승람" 에 보면 강릉도호부 동쪽30리에 위치한다고 하며 등명이란 이 절이 강릉의 등화와 같은 존재이며 또한 서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다 삼경에 산에 올라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과거급제가 빠르다고 해서 연유 하였다고 합니다. 현재 등명사는 폐찰이 되고 락가사가 세워져 있으며 이 탑은 절 경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. 높이 3.5m의 이 탑은 화강석으로 고려시대에 건축되었습니다. 등명사가 폐사된 것은 전설에 의하면 "조손중엽에 모 왕이 심한 안질에 걸려 점쟁이한테 물어본 즉 동쪽에 있는 큰 절에서 쌀들 물을 동해로 흘려 용왕이 노하였다는 말에 왕이 절을 없애라고 하여 없애자 눈이 깨끗해졌다" 합니다. 그 후 500여 년 동안 등명 등불을 꺼버리고 불교의 정기를 없애니 옛 신라의 오층탑만 외롭게 서 있었습니다.지금부터 40여 년 전 경덕 영해당선사께서 이곳에 계시면서 10여 채의 민가를 옮기고 작은 암자를 짓고 관세음보살이 상주하신 산 명칭을 따서 락가사로 개명하고 30여년 살아오면서 락가사는 대웅전, 극락전, 오백나한전 등이 있으며 특히 1977년 10월 16일에는 고려청자 오백나한상을 인간문화재 유근형 옹이 심혈을 기울여 청자로 구워낸 것으로 세계에선 유일한 것입니다.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수다사라고 하였으나, 고려 초기 등명사라고 개명하였습니다. 사찰입구로 들어서다 보면 등명감로약수가 보이는데, 이 약수는 신비의 약수로 통합니다. 오백나한을 조성하여 봉안한 뒤 발견되었고, 그 효능이 뛰어납니다. 탄산수로 특히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약가 있어, 이 물을 마시기 위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습니다. 사찰 안에 위치한 동명사 5층 석탑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37호로 창건, 당시 자장율사가 세운 것으로, 은은한 무늬로 조각된 지대석 위에 축조되어 있습니다. 원래는 3기였으나, 1기는 6.25전쟁 때 파괴되었고, 또 하나는 수중 탑으로 바다 속에 잠겨 있습니다. 석탑의 높이는 약 3.5m이며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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